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옥포 해전 (문단 편집) ===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 [youtube(5C9s8Vh4AMU)] >1592년 5월 옥포 >바다에서 적(敵)을 맞다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첫번째 승리를 향해 >ㅡ [[불멸의 이순신]] 옥포 해전 예고1, [[KBS]] >임진년 5월 옥포 앞바다 >세상을 버티기 위하여 >불패의 신화 >그 첫번째 승리를 향해 >돌아보지 마라 >싸워야 한다 >ㅡ [[불멸의 이순신]] 옥포 해전 예고2, [[KBS]] 61회 ~ 62회에서 나왔다. [[도도 다카토라]] 휘하 일본군 함대가 조선군의 총통에 완전히 박살이 나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6개월 동안 공을 들여 만들었음에도[* 더 정확히 말하면 이 6개월 동안 엄청나게 많은 뱅크신을 확보한 다음 해전 장면마다 적절히 나누어 삽입했으므로, "옥포 해전만" 6개월 동안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해전 전체를 일괄적으로 6개월간 촬영한 뒤 옥포 해전에서는 (첫 해전이므로) 뱅크신 없이 순수 새 촬영본만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고증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원균]]의 함대가 선체를 더 두껍게 보강하여 왜선에 돌격해서 부딪치는 [[충각|충파 전술]]을 활용했다는 것과, 이 과정에서 원균 함대를 호위하던 이순신 휘하 병사들 가운데 일본군의 총탄에 맞은 자가 십여 명이나 나왔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나마 작중 한정으로는 원균과 이순신 사이의 갈등을 다시금 강조하는 동시에 정운이 아직까지 이순신보다 원균에게 심정적으로 가깝다는 것[* 이순신 휘하 함대 가운데 정운의 녹도군만이 원균을 따라 돌격했다.]을 보여주는 훌륭한 장치였지만, 사극인 이상 고증에 맞지 않는다는 점은 변호가 불가하다.[* 예를 들어 조선 수군은 부상자가 겨우 1명이었는데 드라마 상으로는 그보다 더 많은 부상자가 나오고 또 원균의 팀킬도 나와 수십 명은 다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레이션을 통하여 개전 이후 조선군의 첫 승전이라는 점은 정확하게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신나게 발리던 도도는 '여기서 적장(이순신)을 없애지 못하면 자신들은 고전을 면치 못할 거다'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군 함선 하나에 직접 불화살을 쏴 불태우면서 화공을 하라 하는 팀킬도 저지르지만, 당연히 화공은 실패하고 만다. 또한 귀선(거북선)이 출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을 약간 더했다. 이순신이 귀선을 출전시키지 않기로 결정하자 무의공 이순신을 비롯한 부하들은 그토록 노력을 기울여서 만든 귀선을 왜 출전시키지 않느냐며 불만을 표한다. 첫 출전이니만큼 장졸들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으니 이때 신무기인 귀선을 투입해야 그 위력에 기대를 걸고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이순신과 권준은 귀선은 판옥선에 비해 시야확보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 아직 충분치 않은 귀선의 운용 경험 및 훈련 상태를 지적하고, 이런 상황에서 자칫 귀선이 패퇴한다면 사기 면에서 귀선을 투입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반박하며 이후 귀선이 완전히 준비가 된 뒤에 출전시키겠다고 결론을 내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